살아있는 수업

살아있다는 것은 늘 변화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닌가 한다.

조한혜정 교수의 문화인류학 수업. 수업의 흐름과 분위기, 구성원에 따라 수업계획서가 계속 바뀌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수업. 살아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죽은 수업을 해왔던 교수-학생 간의 암묵적 동의에 기반한 게으름이 산산조각나는 순간!

연극 라이어 공연에 관한 기록들

연극 첫 연습

첫 연습. 어떤 식으로든 ‘처음’은 의미있다. 조근조근, 변화된 나의 모습. 내가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도 모임에 임하는 것에도.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결국 문제는 어떻게 변하느냐 거기에 있다. 이러한 변화를 긍정하는 것이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겠지.

M이 맡았던 독백 대본이 귀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막노동 일을 했고 만날 술에 쩔어서 어머니를 두들겨 댔지, 신나게. 그러나 칼로 등을 따도 모를 만큼 엎드려서 잤고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얘길하지. 내가 다 팽개치고 떠나고 싶어도 나 때문에 못 떠난다고……암만 씨부려대지만, 절대로 도망 못 가.”

첫 연습을 마치고 M과 공학원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연극은 왜 하는 거야?” 나는 연극도, 소설도, 영화도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도 진실은 있다. 배우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것에 진실이 깃들 수 있는 것이다. (2006.1.4)

연극 두 번째 공연이 끝나고

생애 첫 연극의 두 번째 공연이 끝났다. 첫 번째 공연과는 달리 너무도 담담한 마지막. 즐겁지 않았다. 보러 와준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재밌다고 말했지만, 나는 별로 재밌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나는 그저 정말이냐고 되묻기만 했다.

연기에 몰입할 수 없었다. 그냥 붕 떠있는 것 같은 기분. 허겁지겁 나가서 그냥 틀리지 않고 대사를 치고 들어오는 것에 급급했다. 그냥 나는 내 배역에 충실하고 상황에 몰입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너무 몸에 힘을 많이 넣었다.

이제 남은 두 번의 공연. 최고의 공연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에게 후회는 남기지 말길. 이제 이 공연이 내 생애 마지막 연극이 될테니. (2006.3.10)

연극 의 막이 내리고

막이 내리고 암전이 되는 순간, 우리에게 혹은 나에게 주어졌던 네 번의 기회는 모두 끝이 났다.

첫 번째 기회에서 나는 그저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었고 비록 관객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하룻밤을 쉬고 다시 맞는 두 번째 기회에서는 너무도 담담한 나머지, 그저 내 대사를 치기에 급급했었다. ‘내가 달달 외운 것은 다 말해놓고 들어가야지’, 그것 이상의 무엇이 있었을지. 세 번째 공연은 두 번째 공연보다는 좀 더 나았고, 그리고 마지막 공연은 초반의 느린 템포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만족할 수 있었다.

네 번의 기회를 모두 소진한 지금, 새로운 연극을 준비하지 않는 이상 ‘연기’를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다시 갖기 힘들 것이다. 쏟아지는 조명 아래에 어둑한 관객들을 앞에 두고, 살짝 떠 있는 무대 위를 자신있게 걸으며 그 순간 만큼은 ‘박세희’가 아닌 ‘트로튼’으로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모두 끝이 났다.

무대 위의 나의 모습은 정말 트로튼이었을까. 내가 객석을 휘 둘러보며 대사를 할 때, 나의 초점이 한 순간도 트로튼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던 것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내 20년 가까이의 연기 배역인 박세희를 억누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박세희는 정말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관객들이 자지러지며 웃을 때, 어둠 속에서 내가 아는 관객을 발견했을 때, 그 때 그 때 튀어나오는 박세희라는 유혹! 우타하겐의 의미는 아니겠지만,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무대 위에서 ‘투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정리할 일만 남았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또 공연에서 형언할 수 없은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느꼈다. 그리고 함께한 시간이 더없이 그리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제 이 시간들은 빛나는 추억으로 그저, 남겨놓아야 한다. (2006.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