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스트라우스』

2005년 봄 학기 박성우 선생님의 서양고대정치사상 수업을 통해서 레오스트라우스의 플라톤 독법을, 장동진 선생님의 정치이론입문 수업을 통해서 레오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을 접했다.

플라톤의 『국가』는 주인공 소크라테스가 ‘哲人(최선자)의 통치’를 통해 최선의 통치체(kallipolis)를 만들 수 있으며, 이 국가(혹은 정체)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더욱 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득하는 논변이 주된 내용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며, 민주적 정치체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위험할 법한 내용이라고 오해할 만하다.

그러나 레오스트라우스는 ‘플라톤, 크세노폰과 같은 현인들의 글을 멍청한 일반 대중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현인들은 소수의 훈련받은 엘리트들만이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밀교적(esoteric) 저술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밀교적 저술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은 ‘철학자들이 알아낸 진리’가 일반 대중들에게는 ‘알아서는 안 되는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겉으로는 사회 유지를 위한 도덕과 윤리를 지키라고 종용하지만, 여러가지 밀교적 방법으로 진짜 진리를 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과 정치는 본래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을 통해 폴리스의 시민들에게 진리를 알리려다 잡혀서 죽음을 당했으며, 이를 본 그의 제자 플라톤은 철학자가 폴리스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밀교적 저술방법이다. 반면에 니체는 이러한 밀교적 전통을 깨뜨리고 극도의 자유와 허무주의를 전파한 위험한 철학자이다.

스트라우시언들의 목적은 ‘좋은 레짐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레짐에서 좋은 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우스는 정작 현실 정치와는 무관한 학자였으나, 앨버트 윌스테터 교수의 도움으로 스트라우스의 제자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알란 블룸이나 어빙 크리스톨과 윌리엄 크리스톨, 폴 울포위츠 등이다. 이 스트라우스 학파의 계보는 책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저자인 박성래는 기자인 자신이 정치철학에 대해서 책을 쓰는 것이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자신은 기자이므로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현대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의 기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스트라우시언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한 예로, 미국이 ‘악의 축’으로 북한을 지목한 것이나, ‘참주정의 종식’ 등의 수사를 쓰는 것은 역시 스트라우시언의 사상들이 미국 외교정책에 녹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트라우시언과 조지 W. 부시는 상호적이다. 저자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파악한다. 여러가지 물증을 통해 스트라우시언이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에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적과 동지의 구분이 필요한 것은 외부의 적이 있음을 통해 내부의 단결, 즉 손쉽게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는 ‘애국법’과도 같은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적은 소련에서 불특정 테러단체로 바뀌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없다. 그래서 9·11은 스트라우시언들에게는 호기였다.

레오스트라우스가 미국 네오콘들의 사상적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자유주의는 인간을 타락시킨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사랑해마지 않는 자유, 소위 리버럴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10대 소녀가 스트립 댄스를 추고 있는데, (소위 리버럴이라는 자들은) 이 소녀가 최저임금은 받고 일하고 있는지를 궁금해 한다.”

또 하나, 스트라우시언들의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투키디데스적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제국주의가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결국 ‘강한 자의 힘이 곧 정의’라고 하는 트라시마코스의 정의관이 국제정치에서는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아테네인과 멜로스인의 대화는 매우 대표적이다.

아테네인은 멜로스인에게 “아테네가 제국이 되어서 다른 도시국가를 정복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만약 멜로스가 아테네와 같은 힘을 가졌다면 역시 마찬가지의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잔인한 최후를 선물한다. 결국 아테네는 무리한 시칠리아 원정을 통해 멸망하게 되지만, 현대 미국은 고대 아테네 보다 더욱 월등한 힘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과도한 팽창이 멸망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최근 자주 언급되고 있는 레짐(regime)과 북한에 대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정권교체’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고 함)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트라우스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한다. 또한 현재 부시 2기의 대외 정책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는 나탄 샤란스키의 『민주주의를 말한다(The Case for Democracy)』 역시 북미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해하기 쉽게 썼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반복되는 말들은 책을 두껍게 하는 데만 공헌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한 학술서가 아니기 때문에 레오스트라우스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미뤄놓고 칼 포퍼의 ‘사이비 과학론’만을 반복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의 남북미 관계를 바라보는데 여러모로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저평가 되기는 아쉬운 책이다.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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