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

고향집이 이사를 했다.

이사하고서 처음 가봤는데, 내 짐들은 대략 엉망진창이 되어있고, 나 역시 그걸 정리할 시간이 부족해서 그냥 부모님께 시중에 파는 보관함 같은데 넣는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부쩍 넓어진 누나방에서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앨범과 누나의 사진첩을 열어보게 되었다. 아, 스캐너가 있었다면 몽땅 디지털화해서 두고두고 보고 싶던 사진이 얼마나 많던지!

특히 사진첩을 넘기면서 늘 울상인 통통한 누나의 옆에서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아버지를 곧잘 흉내내던 나의 모습을 종종 찾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절대로 넉넉하지는 않은 집안(집구석)이었지만, 사진을 봤을 때는 남들 하는 것 다 해보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딱히 가족여행을 많이 간 것도 아니지만 없는 살림에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새벽에 부모님의 사랑을 혼자 상상하곤 괜히 목이 매었다. 나도 꽤 애정을 받아가면서 자랐구나 싶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민들레영토에서 우연히 미술 만화를 읽었다. 그냥 모네와 인상주의에 관한, 초등학생이 읽으면 딱 적절히 어렵고 좋을 만화책이었다.

여느 선구(先驅)가 그렇듯, 인상주의가 처음부터 살롱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책에서는 일곱 번에 걸친 전시회 끝에서야 그나마 작품이 좀 팔리고 인상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찬사가 쏟아졌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모네의 ‘빛’에 대한 집착은 실로 굉장한 것이었다. 결국 모네는 몇 번의 눈 수술 끝에도 실명하고 말았고 그렇게 두 눈을 잃을 때까지도 ‘빛’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 인상주의 화풍이라면 ‘사물보다는 사물에 대한 인상을 표현한 것’ 정도의 설명 밖에 하지 못하지만 예술가의 아주 일반화 된 궁핍한 삶은 내게 많은 것을 시사했다. 자신이 선택한 길, 자신이 하고 싶어 나아가는 길 위에서는 절대로 뒷걸음질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자신이 세운 뜻을 두고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다.

2005년 봄학기 마감

파일링에 아직 꼽혀있던, 기말고사 때문에 흩어져있던, 구겨져있던 노트 필기를 주섬주섬 모아서 파일케이스에 넣었다. 워드파일로 남겨져 있는 hand-out이나 study-question 같은 것들은 추려서 버렸다. 그래도 파일케이스가 빠방하다. 다음 학기부터는 좀 더 큰 놈으로 마련해야 겠다.

이 파일케이스를 닫고 드디어 한 학기를 마감했다. 책도 안 만들었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었고 운동도 하지 않았고 중간고사 때는 아파서 시험도 거르고 오만가지 일들이 다 있었던 한 학기였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한 학기가 끝났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해서 초보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다. 구조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미드의 사회심리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진하나마 Marx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맛봤고 Plato의 저작을 읽을 수 있었고 여러모로 고대 아테네에 대한 흥미를 키웠다. 옛날이야기 듣듯 고대 중세 근대 경제사를 배울 수 있었고, 국제관계론을 통해 베스트팔렌부터 얄타까지 현실주의부터 구성주의까지 냉전의 소소한 뒷얘기들까지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 탓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얻은 것을 붙잡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