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awls, 『정의론』에 대한 일반적인 수준의 이해

롤즈의 정의론은 무엇보다도 사회구조의 기본구성원리이다. 인간 사회에는 공동 이익의 추구, 이익 배분에서의 갈등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치라는 것은 갈등을 정의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는 과정(롤즈의 입장에서, 정치는 갈등이라기 보다는 조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정의의 두 원칙을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구성원리는 정치적인 기본권과 관련한 입법이나 경제적·사회적 체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것들이다. 정의의 두 원칙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원칙일 뿐이다. 이 원칙을 통해서 제헌이 있고, 입법이 있으며, 규제의 실현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지상의 원리를 찾고자하는 것이 정의론의 과정이다.

정의의 두 원칙원초적 입장을 가정함으로써 가능하다. 원초적 입장은 가상적인 최초의 원상이다. 이 원초적 입장에서 모든 개인들은 상호 무관심한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무지의 베일 상태에 있다. 롤즈는 원초적 입장이라는 가정을 통해서 합의된 두 원칙이 무엇보다 ‘공정하다’고 한다. 그래서 롤즈의 정의의 두 원칙은 ‘공정으로서의 정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롤즈의 이런 생각은 합의되는 절차가 공정하면 거기서 합의된 내용(인 두 원칙)도 공정할 것이라는데 바탕을 둔다. 무지의 베일은 합의 과정에 참여한 개인이, 자신의 특수한 조건을 배제함으로써 일반, 보편 원칙을 합의 할 수 있게 돕는다. 상호 무관심한 합리성은 인간에게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타인들과의 이해관계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이런 것은 (롤즈가 불필요하다고 본) 시기심을 배제하는 가정과도 연관이 있다. 어쨌거나 롤즈는 인간을 ‘스스로의 건강하고 충분한 인생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로 보고 있다.

이렇게 합의된 내용이 정의의 두 원칙이다. 이 두 원칙들 사이에는 뚜렷한 서열이 존재하는데 무엇보다 첫 번째 원칙이 두 번째 원칙에 우선성을 가진다는 것과 두 번째 원칙의 b) 기회균등의 원리가 a) 차등의 원리에 선행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롤즈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치적 자유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개인의 자아실현의 기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롤즈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롤즈의 정의는 사회적 기본재를 분배하는 것이다. 롤즈가 말하는 사회적 기본재란, ‘합리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한 사람들이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는 데 요구 될 수 있는(may) 필수적인 요소’이다. 될 수 있다는 것은 공적 토론의 장을 통해서 사회적 기본재가 결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롤즈의 정의 사회는 민주주의가 전제 되어야 한다. 사회적 기본재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사회에 근거한 자존(social based self-respect)이다. 실천적 영역에서 이것은 수입(income)으로 나타난다. 또 롤즈는 사회적 불평등을 사회적 기본재의 분배 상태로 측정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통해 최소수혜자를 가려낼 수 있다.

제1원리가 제한 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뿐이다. 제한된 자유가 모든 이가 공유하고 있는 자유의 전체적 체계를 강화할 때와 덜 평등한 자유를 보다 작은 자유를 가진 자들이 받아들일 때이다. 제2원리인 차등원리는 최초의 평등한 상황 보다 모든 사람들의 처지가 더 나아질 때의 불평등한 상태만 허용한다. 이는 (원초적 입장에서 시작한 개인들의) 합의 과정에서 maximin(최소 극대화)원칙이 우월 전략으로 선택되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들은 자신의 처지가 최소수헤자의 처지가 될 수 있음을 가정할 수 있는 능력(상호 무관심한 합리성+무지의 베일)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차등의 원리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차등의 원리에 선행하는 것이 기회균등의 원리(제2원칙의 b)이다. 기본적으로 롤즈의 입장은 이 둘(차등의 원리+기회균등의 원리)이 결합된 ‘민주적 평등’이다. 민주적 평등은 자유적 평등이나 자연적 자유체제에 비해서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을 보상할 수 있는 체제이다. 롤즈는 선천적인 능력이나 태생적인 환경이 남보다 뛰어난 것도 불합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민주적 평등은 무엇보다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한다. 또한 차등의 원리는 모든 이들의 이익이 긴밀히 연계되어 있을 때, 최하위층의 이익 향상이 최상위층과 최하위층 사이에 있는 모든 개인들의 이익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쇄관계’를 통해 효율성도 보강한다.

이런 차등원리를 두고 롤즈를 평등주의자(평등주의자들이 들으면 웃겠지만)라고, 개인의 소유권을 부정하는 재분배이론이라고 비난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이 있다. 롤즈의 사상이 전반적으로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 체제와 같은 복지를 옹호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롤즈는 불평등을 긍정한다(댠, 그 불평등한 상태가 최초의 평등한 상태보다 모든 사람들의 이익이 나아졌음을 보장할 수 있을 때). 차등원리는 엄밀히 말해서 재분배가 아니라 원래적 분배이다. 시장에서 타자의 손실 없이 이익 개선이 가능할 수 있는가. 파레토 최적 상태라면 더이상 타인의 배고픔 없이 자신이 먹을 수 있은 파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더 먹고 싶다면 필연적으로 타인을 굶겨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소유가 온전히 개인의 힘을 통한 부의 축적임을 주장할 수 있는가.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

공산주의를 특징 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의 폐지이다. 그런데 현대의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계급 대립에, 즉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들의 착취에 근거하는 생산물의 생산 및 전유의 최후의 완성된 표현이다.

― Karl Marx & Friedrich Engels, 『공산주의당 선언』 中.

읽기 1

책이건 논문이건 아예 읽지 않고 맹탕 놀고 있는 것은 아닌데, 한숨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요약, 정리가 잘 안되는 깊은 책들이라서, 서평을 쓴다거나 하게 되면 읽으면서 했던 잡상들이나 잔뜩 옮겨 적고 말게 될 것 같다.

언제, 무슨 책을, 몇 번째 읽었다는 개인적인 기록이라면 또 몰라, 공개적으로 그런 것을 밝힐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좋은 서평을 써야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더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두려워진다. 겸손한 인간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각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좀 읽었다고 생각해서 막 말하는 시기는 더 읽으면 자연히 스쳐지나가게 된다.

만약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면 선학들의 발자취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했던 얘기만 또 하게 된다. 신진욱 선생님께서 ‘공부하면서 드는 의문들을 놓치지 말고 끈기있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읽거나 보는 것보다 말하고 쓰고 보여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읽는 것에 집중을 잘 못할 때가 많다. 조금 읽어가다가 문득 드는 의문을 빨리 누구에게 묻고 싶어서 답답할 때가 많다. 그 물음을 깊숙히 삼킬 때면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조용히 내가 던진 질문들을 정리하고, 그것들의 답을 스스로 찾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확실하게 쌓아가는 공부를 하고 싶다. 학교에 좋은 학형이나 교수들은 널려 있다. 조급해말고 천천히 물어보자(다만 물어보는 행위는 궁구를 더욱 재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