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리처드 루벤슈타인, 한인철,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이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수준의 기독교에 대한 정의이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믿는다는 것이다. 6년간 수학했던 대구 영신 학원에서 주워들은 바로는 예수는 곧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이다. 사실 나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인지 예수가 곧 하나님임을 믿는다는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이는 물론 기독교의 세부적인 교리를 공부한 적도 없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억지스러운 기독교‘적’ 환경에서 수학하면서도 끈질기게 비종교인으로 버텨온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근본적으로 종교를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는 종교 역시 세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나는 나의 설명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한 인간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종교적 설명, 특히 기독교적 설명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냉소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 냄새가 풀풀 풍기는 공간이며, 종교적인 표현으로 속(俗)하고 땀내 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두 부모와 손위 누이 한 명이 가족이며 전부였던 나에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聖)스럽고 고상한 삶은 콧방귀를 자아낼 뿐이었다.

어려서 맛난 음식을 준다기에 처음 가봤던 교회는 평소에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해주었다. 그 기억은 아직도 고마움으로 남아있지만 교회에서 들었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말과 예수가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얘기는 나를 더욱 더 억한 심정으로 만들었다. 나는 시련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감내하는 순응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항상 모든 것을 감사하는 삶은 아름답지만 고통까지 감사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내가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을 만든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라는 예수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내가 막연한 기독교 혐오를 겪게 된 데는 기독교의 가르치는 방식이 꽤나 위압적이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설명, 읽기 어려운 문체의 성경과 너무도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던 문장들은 수많은 의구심을 안겨줬다.

신앙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앙은 무근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신앙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에서도 이 생각은 일견 타당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무조건적인 믿음만이 신앙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기독교 신앙이라고 보이는 것들의 근거는 오래된 책인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내 나름대로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논리였다. 이런 논리를 실존적으로 풀어내게 된 것은 신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한인철 교수님의 말씀 덕분이다.

이 책은 이후 1600여 년 동안의 기독교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린 한 논쟁에 관한 역사적인 서술이다. 이 책을 펼치면서부터 덮을 때까지 줄곧 내 머리를 관통했던 것은 기독교 역시 다른 인간적, 사회적, 문화적 유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인류학이나 사회학에서 이것은 정설이다. 이러한 논의가 불경한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교회뿐이다. 여기에 아리우스 논쟁이 가져다 준 결과물이 하나 있다. 아리우스 논쟁이 끝나기 전에는 유태인과 기독교인이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었고, 예수의 신성(神性)이나 구원의 의미 혹은 기본적인 윤리 기준 등 모든 것에 대해 서로 논의할 수 있었다. 당시에 형식적 제의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여, “홀로 함께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찾고자했던 로마인에게 기독교 메시지는 큰 호소력이 있었지만 제국에게 기독교는 제국 유지의 필수 요소인 다원주의를 거부하기에 박해의 대상임에 분명했다.

이렇게 기독교가 확산되어가는 가운데 제국의 박해는 곧 기독교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박해가 계속되면 될 수록 기독교는 더욱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박해에는 크게 두 가지 대응이 가능한데, 하나는 박해를 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박해에 맞서는 것이다. 박해의 과정에서 변절과 기회주의가 없었더라면 분열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박해는 분열과 함께 많은 질문들도 낳았다. 예수의 삶은 인간의 행동을 위한 실제적인 모델인가, 아니면 단지 하나의 이상일 뿐인가. 결국 세속 조직과 종교적 열정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교회는 포용적이고 현실적인 입장을 택했다. 논쟁의 씨앗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리키니우스와 콘스탄티누스가 함께 기독교의 박해 문제를 종식시키기로 하고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내렸다. 이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 신앙을 절대적으로 인식하게 된 황제의 개인적 감화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기독교를 통해서 서로 갈등 관계에 있는 제국의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의 거대한 영적 교제 속에 통일시키는 것이었다. 제국의 대부활의 꿈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도움으로 이루려 한 것이다. 이러한 목적의 연장선에서 아리우스 논쟁의 결말도 생각해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국의 평화를 원했던 황제에게는 기독교든 이교든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제국은 단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황제는 예수가 하나님이 입양한 아들입네, 예수가 원래 하나님입네 하는 교리 논쟁의 과열은 파괴적이며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선택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교리 논쟁의 주된 논점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즉, ‘동일성(the Same)’과 ‘유사성(Similarity)’의 문제였다. 그리스 철학에 기반을 둔 아리우스 진영은 예수는 하나님의 유사성을 지닌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지 그가 곧 하나님은 아니라고 했다. 이에 반해, 알렉산더 주교와 아타나시우스는 예수가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라면 그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본질(homoousios)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주교 회의가 열렸고, 정치적 필요성을 인식한 황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논쟁과 회의에 개입한다. 이런 과정이 지독하게 되풀이되면서 논쟁에서의 승리자는 이제 그의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로마 제국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논쟁에서 승리한 진영은 새로운 신조를 만들 때마다 상대 진영에 저주를 퍼부었지만 결국 그 저주는 주교들이 믿는 하나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권력이 내리는 것이었다. 기독교 제국에서 대주교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황제의 호의에 구걸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 때 아리우스 진영의 교리가 제국 전체를 장악한 듯 보이는 시절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리우스 논쟁은 동방과 서방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방과 서방은 편을 나누게 되었고 로마 제국의 정치는 내부에서부터 분열되었다. 게다가 야만족(지극히 로마중심적인 표현인)의 침입까지 잦아져 제국은 눈에 띄게 병약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존을 갈망하는 이른바 ‘새로운 현실주의’가 등장했고 아리우스 적 세계관은 계속 쇠퇴하게 되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대기를 짓누르는 시절에는 아리우스 적 기독교보다는 니케아적 기독교가 기독교인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더 적절했다. 380년 1월, 테오도시우스 1세는 니케아 신조를 정통으로 선포하고 “아버지, 아들, 성령이 동등한 위엄과 정통 삼위일체 속에서 하나의 신성”을 갖는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참된 기독교인이라 말했다. 그리고 법적으로 아리우스주의를 매장했다. 마침내 니케아 신조가 채택되었고 예수는 하나님이 되었다. 이 덕분에 니케아 회의는 오늘날까지 교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왜 기독교는 결국 예수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는가. 이 논쟁이 오늘날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선 나는 이 논쟁이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기독교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별 타당성 없는 비전으로 보였던 아리우스의 비전을 돌아보자. 아리우스에 따르면, ‘도덕적 진보의 등대는 무력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빛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무력한 인간에게 힘을 불어넣어 신성을 향한 그들 자신의 잠재능력을 계발하도록 빛을 보내는 것’이었다. 반면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어떠한가. 오늘날의 기독교는 시대논리에서 나온 절대교리를 가지고 맹신할 것을 가르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철학적 자세가 부재한 종교이다. 앞서 말했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믿음만이 신앙이라고 한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현재 이단이라 비난받는 사이비 종교들과 어떻게 다른가. 절대적 무조건적 믿음이 신앙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인정할 수 있다면, 기독교에서 사이비 종교에 가하는 비판은 당장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판단 기준은 분명해졌다. 대표적 사이비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예수의 존재를 꼽겠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듯 예수가 하나님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그 진위여부를 가릴 능력이 없고, 진위여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리우스 논쟁 당시, 현재로서는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논쟁에 불이 붙고 폭도들이 흥분한 이유는 그들 개개인이 예수라는 인격적 주체와의 개인적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타 사이비 종교와 다른 것은 유구한 전통과 역사가 아니라 바로 이 예수 때문이다. 이제 예수는 현실적 이유에서건 실존적 이유에서건 하늘에서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 이 책이 ‘당시의 상황’에 맞는 설명, 가장 납득되기 쉬운 설명을 채택한 한 논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면 결국 ‘현재 상황’에 가장 잘 들어맞는 설명, 현대인에게 가장 잘 납득될 만한 설명을 채택하자는 주장에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나는 예수를 죽어서 가는 천국에서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바로 지금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박세희 (2004)

예수는 누구인가 (존 도미니크 크로산, 한인철, 한국기독교연구소, 1998)

자라온 환경이 기독교적 문화와 거리가 있었던 나는 어릴 적 위인전을 읽은 것으로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대해서 처음 알았다. 물론 성탄절이 예수의 생일이라는 것 정도의 수준은 미리 알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s)가 단순히 그의 본명이라 생각했다. 그리스도가 어떤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바는 사실 전혀 없다. 예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미신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많은 사람들을 먹인 일 ― 책에서는 ‘자연기적’이라는 용어로 표현되어있었다 ― , 눈먼 자를 눈뜨게 한 일,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하는 일과 같은 얘기 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이런 기적 같은 내용은 마치 사이비종교에서 미리 짜놓은 연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행위와 오버랩 되어 스쳐갔다. 단순한 이미지의 교차현상이었지만 내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었고, 거부감이 들었다. 막연한 기독교 혐오가 생겼다.

예수가 한 말은 모두 입바른 소리였다. 대개가 일생을 좌우명으로 가슴에 지니고 살 만한 것들이었다. 예수의 인생은 영화였다. 예수의 자취나 성경에 나오는 얘기는 모두 하나같이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귀감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근본적으로 예수를 믿을 수 없었다. 예수에게만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외를 허용할 수 없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이나 다시 부활했다는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의구심을 품었지만 예수가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신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대로 신과 인간의 아들,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예수를 낳기 전에도 낳고 나서도 처녀인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이라고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접신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지만 나에게 그런 경험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나는 쉽게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에 불가능한 일이 1세기라서 왕왕 행해졌다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게 있어 예수는 그 업적은 훌륭하다고 평할 수 있으나 그와 관련된 일화와 기독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에 절대로 좋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였다.

저자인 크로산은 예수에 대해서 서술한 각각의 복음서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얘기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비종교인인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복음들을 그 문자 자체가 사실이 아닌 고대 예언서를 바탕으로 한 ‘의도적 해석’이라 평한 것이다. 또 우리가 많은 회화나 예술작품을 통해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예수에 출생과 유아기에 관한 내용은 거의가 사실적 기록이 아니며 신적 개입을 통한 동정녀의 임신 역시 어떤 종교적인 창작이라고 언급한다. 그는 예수는 단연코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에 갔다. 당시 요한은 하느님을 기다리는 묵시문학적 예언자로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온 자들을 광야에서 정화해 다시 돌려보냄으로서 마음 속 깊이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예수는 요한의 묵시문학적 활동을 이어받았지만 요한의 죽음을 계기로 사명과 운동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 운동을 전개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땅에서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라 가르쳤다. 이것은 혁명적인 것이며 묵시문학적 예언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회변혁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예수는 배울 수 없는 천한 장인 계급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가 가르친 내용이 논리 정연한 인쇄물로서 남아있진 않다. 예수는 개방적인 공동체를 지향했고 가족이라는 틀을 깨려고 노력했다. 또한 구조적인 악에 대해서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밥상이라는 것은 사회의 축소모형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개방된 밥상을 통해 길에서 헐벗은 자를 자신의 식탁으로 들이고 함께 식사를 하라고 했다.

예수는 그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비유로 풀이함과 동시에 직접 몸으로 실천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핵심일 것 같다. 예수가 유사 이래 가장 유명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예수가 기적을 행했는가에 대해서 크로산은 일약하여 “상징적인 표현이다”고 말한다. 오히려 고대의 상징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현대인들의 무지를 탓한다.

예수는 그의 운동을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어떤 중간자적 존재, 매개하는 존재도 만들지 않았으며 하느님 나라와 1:1의 관계를 가지도록 했다. 이것은 곧 실천이 하느님 나라로 가는 방법이라는 직관을 낳는다.

운동을 확산시키는 독려하는 공동체는 개방된 밥상과 무상의 치유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집 있는 자와 집 없는 자(유랑자)를 공동체적 상호의존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바꿔 말하면 계급간의 화해이다.

이제 우리는 궁금하다.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난한 자가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을 따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물론 그럴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라고. 일상에서 가지는 긴장감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십자가형에 처하게 된 예수에 대한 기록은 그 상세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구약의 예언에서 옷을 찾아 입힌 것이라고 한다. 또, 예수의 부활이라는 것도 예수가 실제로 부활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 시간으로 해석해서 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가지고 몇 개월, 몇 년을 버텨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운동의 주도자였던 예수가 예수라는 존재 자체를 절멸하는 십자가형에 처했다는 것은 운동 자체의 중심핵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아있는 자들은 그 두려움에 더 이상의 비전을 갖지 못하고 운동을 그만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운동을 일궈냈고 예수는 20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우리와 만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다.

예수는 분명히 인간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줄곧 품어왔던 의심이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이해라는 행위를 가능하게 했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예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예수는 인간임과 동시에 사회 활동가, 혁명가였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예수는 현재 그려지고 있는 예수와 용모만 비슷한 게 아니라 사상도 비슷했던 것 같다. 예수는 나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 나를 기쁘게 했다. 읽는 내내 든든한 동지를 얻은 것 같았다. 그는 구조적인 악을 거부하고 평등이라는 관점을 지지하면서 왼편에 있는 좌파적인 사상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되었고 복음에 있는 얘기들 역시 하나의 상징이라고 해석하며 받아들이니 그렇게 이해가 쉬울 수가 없었다.

자연기적은 곧 예수의 권위에 대한 비유이며, 예수가 보여준 치유에 대한 기적은 곧 예수가 사회에서 격리된 자들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대한 비유였다. 나는 예수에게 기적의 능력이 있다고 원래 믿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한 일은 오히려 신비한 능력으로 조화를 부린 것보다 더 위대하다.

난 이로써 의심이 아닌 확신을 얻었다. 예수는 인간이며, 혁명가였다. 내가 하려는 것, 내가 지향하는 사회 역시 틀린 것이 아니며 이념적인 허상이 아니다. 1세기의 인간인 예수가 어떻게 평등이라는 개념과 밥상을 통한 개방된 공동체 그리고 가부장제의 차별적 행태에 대한 통찰을 얻었는지 그것부터가 ‘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의 일생이 어떤 식으로 ‘잘못’ 미화되어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는지는 이제 내게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예수라는 인간에 대해서 더 공부하는 기회를 가지면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힘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는 내 정체모를 기독교 혐오를 넘어섰다. 그래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예수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 예수를 말하고 가르치는 오늘날의 기독교 현실이 계속 떠올라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예수를 바로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