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함

정확히 2004년 2월에 상경, 좋아하는 책들과 아직 덜 읽은 책들과 그리고 공부하는 책들, 입을 옷, 이렇게 주섬주섬 챙겨서 연희동 하숙집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3월, 4월, 5월, 6월, 7월을 보냈다. 정확히 5개월을 이 방에서 보냈다.

어제 파병반대 집회에 참석한 뒤에 H형과 김밥천국에서 허기를 채우고 나서 생활에 대해서 얘기했다. 요전까지 나의 무기력하고 불규칙하며 무계획적인 생활에 대해서. H형은 한마디 해줬다. “가족이 없어서 그래.”

가족이었다. 난 정확히 18년 2개월을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밥은 언제나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셨고 빨래도 물론 어머니께서 해주셨다. 방청소는 내 몫이었지만 어쨌든. 난 내 생활의 대부분을 가족과 공유하고 있었고 알게 모르게 가족들은 내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이루고 배워나가리라, 했던 당찬 결심은 이내 흔들리고 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하나 둘씩 날 발목 잡았다. 모든 일을 나 혼자 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벅찬 일이다. 더군다나 생활이라는 것은 순환의 고리와 비슷해서 한 번 악순환의 싸이클을 타면 쉽사리 헤어날 수 없다.

오늘 하숙집을 비우기 위해서 짐을 싸면서 이것저것 생각했다.

내가 이루려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내 삶을 통해서 실현하려는 의미가 무엇이든, 정말 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위대해지자고 스스로 위대하면서도 초연해지자고. 정말 지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비범해지자고 생각했다.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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